[해외][베네수엘라 긴급구호] 전라남도의사회와 함께 한 베네수엘라 긴급 의료지원 활동 보고

2026-09-26



지난 6월, 베네수엘라 북중부를 덮친 연쇄 강진 이후 두 달 반이 지났습니다. 뉴스에서는 이미 사라진 이야기였지만, 라과이라의 이재민 캠프에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글로벌케어는 9월 초 전라남도의사회와 함께 그곳을 찾아 사흘 동안 160명을 진료했습니다. 이 글은 그 사흘의 기록이자, 현장이 저희에게 던진 질문 ...  “긴급구호가 끝난 뒤,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 ... 에 대한 글로벌케어의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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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네수엘라, 지금


2026년 6월 24일 오후 6시 4분(현지 시각), 베네수엘라 북중부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했고 39초 뒤 규모 7.5의 본진이 이어졌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가운데 하나가 수도 카라카스 북쪽 해안의 라과이라주입니다. 카라카스의 관문인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이 크게 파손됐고, 위성 분석으로는 카티아 라 마르 건물 3만여 채 중 3분의 1 가까이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범미보건기구(PAHO)가 7월 말 공식 집계를 바탕으로 발표한 피해는 사망 5,398명, 부상 16,740명, 이재민 1만 7천여 명이며, 2만 3천여 명이 107곳의 임시캠프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한 9월 초, 현장은 ‘응급’에서 ‘조기회복’으로 넘어가는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 의료지원은 줄고 있었습니다. 지진 대응에 참여한 국제응급의료팀 22개 중 13개가 이미 임무를 마쳤습니다.
  • 병원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보건시설 피해에 약·장비·의료인력 부족이 겹쳐, 피해 주민들은 기본적인 진료조차 이어가기 어려웠습니다.
  • 캠프는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이었습니다. 보건당국은 캠프에서 호흡기 감염, 설사, 피부질환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복구 속도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글로벌케어가 이 시점에 현장으로 간 이유입니다.



2. 현장으로 가는 길


가는 길부터 변수가 많았습니다. 오석 상임대표와 이희수 전라남도의사회 의료봉사단장은 미국 뉴욕과 파나마를 거쳐 발렌시아로 들어간 뒤 육로로 카라카스까지 이동했습니다. 국제 금융망이 끊겨 있어 해외 송금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현지 비용은 법인카드와 현금을 직접 들고 가서 결제했습니다.


의약품과 물품은 통관 지연을 피하기 위해 현지에서 직접 구입했습니다. 9월 2일 먼저 출발한 김상래 팀장이 현지 파트너와 구호소 동선을 확인하고 약품을 미리 확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동 호흡기 감염 수요가 예상보다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9월 5일 하루에만 세 차례에 걸쳐 아이용 항생제 시럽 100병을 추가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9월 6일 팀이 모두 합류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진료소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이 없는 캠프에서는 접이식 테이블 5개와 의자 5개, 보관함 6개, 체중계 2대가 공식 진료실이 됩니다. 

대기하는 아이들을 위한 축구공 2개도 함께 챙겼습니다.




3. 사흘간의 진료


한 팀이 된 14명

진료팀은 한국과 베네수엘라 의료진이 함께 꾸렸습니다. 한국에서는 이희수 단장(진료 총괄)과 오석 상임대표(진료·사업 총괄), 김상래 팀장(현장 조율·조달·기록)이, 현지에서는 통역을 겸한 의사 2명과 의료보조 1명, 간호사 1명, 그리고 ASIGLEH의 로저 모레노 목사와 자원봉사 리더 6명이 함께했습니다.


한국 의사의 질문을 현지 의사가 스페인어로 전하는 구조였기에 증상의 의미가 통역 과정에서 흐려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파견팀이 떠난 뒤에도 이 캠프를 아는 의료진이 현지에 남습니다.


진료는 ‘접수 → 혈압·혈당·산소포화도·체중 측정 → 의사 진료 → 투약·상담’ 순서로 진행했습니다.


4.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


출발 전 저희는 골절·상처 같은 지진 외상 환자를 예상했습니다. 현장 진료기록지도 외상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었지요. 하지만 기록이 남은 155건 중 지진 직접 외상은 **6건(3.9%)**뿐이었습니다. 지진은 한 순간이었지만, 그 뒤에 남은 것은 의료가 끊긴 일상이었습니다.


아이들, 캠프에서 가장 먼저 아프다


사흘 동안 만난 15세 미만 아이는 19명이었고, 그중 63%가 호흡기 감염이나 발열·설사로 진료소를 찾았습니다.


  • 한 살 남자아기는 체중 11kg 남짓에 가래 섞인 기침과 호흡곤란으로 왔고, 진료팀은 주의가 필요한 단계로 분류했습니다.
  • 두 살 아이는 사흘째 열이 내리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 녹색 가래를 동반한 기침, 반복되는 설사, 구충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여러 아이들에게서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과밀하고 환기가 어렵고 물이 부족한 캠프 환경이 아이들의 몸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아이 체중을 늘리고 싶다’며 영양 상담을 받으러 온 가족도 있었고, 영양 상태를 더 살펴야 할 아이들도 확인됐습니다.
  • 세째 날에는 경련 때문에 여섯 살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있었습니다. 신경과 전문 진료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미리 확보한 아이용 항생제 시럽 120병과 구충제 100상자는 이런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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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끊긴 사람들, 자신의 병을 모르는 사람들


진료기록지에는 로사르탄, 캅토프릴 같은 혈압약을 이미 복용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남아 있습니다. 치료를 받고 있던 만성질환자 상당수가 지진 뒤 약 공급이 끊긴 상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의 병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스스로 고혈압이 있다고 말한 분은 37명이었지만, 실제 측정에서 수축기 혈압 140 이상은 120명 중 40명(33%)이었고 그중 8명은 180을 넘어 즉시 관리가 필요한 수준이었습니다.
  • 당뇨가 있다고 말한 분은 4명뿐이었지만, 혈당이 당뇨 의심 기준(126mg/dL)을 넘은 분은 94명 중 29명(31%)이었습니다. 가장 높은 수치는 269였습니다.


사흘간의 이동진료가 사실상 마을 전체의 ‘만성질환 선별검사’가 된 셈입니다. 

동시에 이번 활동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위험군을 찾아냈지만, 현지에서 구할 수 있던 만성질환 약으로는 다음 진료까지 이어질 만큼 넉넉히 드리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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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바닥에서 자는 두 달


60세 이상 어르신 26명에게서는 근골격계 통증(8건), 고혈압·혈관 질환(5건), 두통 등 신경계 증상(4건)이 많았습니다.


  • 80대 여성은 온몸의 근육통을 호소했습니다.
  • 80대 남성과 70대 여성은 다리 정맥류로 통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침대 대신 바닥, 방 대신 좁은 대피소에서 보낸 두 달이 어르신들의 몸에 가장 크게 남아 있었습니다. 사흘간 가장 많이 본 질환이 근골격계 통증(29건, 18.7%)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르신들은 약 공급 중단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스스로 병원을 다시 찾기도 가장 어려운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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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한 번의 진료로 끝낼 수 없는 문제


환자의 61%가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 건강의 문제는 이동진료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 혈압 조절이 되지 않는 임신부, 출산 후 자간전증(임신성 고혈압의 합병증)이 확인된 산모가 있었습니다.
  • 40대 여성은 이전에 받은 유방 영상검사 결과지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결과는 악성이 의심돼 정밀검사가 꼭 필요한 단계였습니다.
  • 50대 여성은 복벽 탈장에 많은 출혈을 겪은 적이 있어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 10대 후반의 여성은 눈 질환으로 안과 정밀 진료가 필요했습니다.


진료팀은 이 세 분을 상급 의료기관으로 의뢰했습니다. 사흘간 의뢰된 세 명이 모두 여성이었고, 모두 이동진료 현장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술과 정밀검사의 영역이었습니다. 문제는 지진 뒤 이 지역에 보낼 만한 병원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세 분이 실제로 진료를 받았는지는 현지 파트너 ASIGLEH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남긴 상처, 그리고 마음

외상 환자 6명 가운데에는 지진 당시 넘어지며 손목을 다친 분, 오토바이 사고로 쇄골이 부러진 분이 있었습니다.

진료실에서 직접 마음의 어려움을 호소한 경우는 3건이었지만, 가족과 이웃을 잃고 끝을 알 수 없는 캠프 생활을 이어가는 주민들의 심리적 부담은 숫자보다 훨씬 컸습니다. 날이 갈수록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늘었던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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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숫자로 보는 사흘


항목내용
진료 인원160명 (9/7 50명 · 9/8 50명 · 9/9 60명)
환자 구성여성 61% · 40세 이상 59% · 15세 미만 19명 · 60세 이상 26명
주요 질환근골격계 통증 18.7% · 검진·상담 16.8% · 호흡기 감염 14.8% · 
신경·두통 9.0% · 고혈압·혈관 7.1%
직접 외상6건 (3.9%)
위험 신호수축기 혈압 140 이상 40명(측정자의 33%) · 혈당 126 이상 29명(31%)
투약139명 (약 90%)
상급기관 의뢰3명 (유방 정밀검사 · 탈장 수술 · 안과) 



7. 현장이 알려준 것, 그리고 앞으로의 길


사흘간의 진료가 글로벌케어에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재난 후 석 달이 지난 현장에 필요한 것은 응급 외상 치료가 아니라, 끊긴 일차의료를 다시 잇고 그것이 계속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한 번의 방문은 고혈압·당뇨 고위험군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그분들이 다음 달에도 약을 드실 수 있게 하지는 못합니다. 선별만 하고 연결하지 못하면, 측정값은 기록으로만 남습니다. 글로벌케어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베네수엘라 지진 피해지역의 다음 단계 인도적 지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피해 주민 공동체의 신체적 건강 회복과 심리사회적 회복탄력성 강화입니다.


① 한 번의 방문에서, 꼬박꼬박 찾아가는 돌봄으로

현지 의사와 간호사로 꾸린 팀이 여러 캠프를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이동진료와, 지진으로 멈춘 기초 보건시설의 재가동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만성질환 약은 한 번 나눠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방문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보충하고, 이번에 한 번의 진료로는 다루지 못한 임신·출산 관리와 여성·청소년 검진도 포함하려 합니다.


② ‘찾아내는 진료’에서 ‘이어주는 진료’로

혈압·혈당 고위험군과 임신·산후 관리 대상, 상급 병원 의뢰 환자를 명단으로 관리하고, 현지 파트너와 보건당국이 함께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선별-연계-추적’ 체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번에 사용한 진료기록지가 외상 위주로 만들어져 현장의 진짜 모습을 담지 못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캠프별 기초 보건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모으고 유관기관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③ 병이 생기는 환경을 바꾸는 일

아이들의 호흡기 감염과 설사는 약만으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캠프에 이동식 세면대와 화장실을 보완하고, 손씻기 등 기초 위생교육과 위생키트 배분을 함께 진행해 감염병이 생기는 조건 자체를 줄이려 합니다. 저체중 아동의 영양 평가와 구충도 정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④ 몸의 회복과 함께, 마음의 회복을

가족과 이웃, 집과 생계를 잃고 끝을 알 수 없는 캠프 생활을 이어가는 주민들에게는 마음의 회복도 필요합니다. 글로벌케어는 캠프 주민 가운데 자원활동가를 발굴·교육해 캠프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소그룹을 운영하는 공동체 기반 심리사회적 지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진 당시 이웃을 구하려 잔해를 파헤친 주민과 구조대원처럼, 다른 사람을 지키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지역 재난 대응 인력을 위한 동료지지 모임도 함께 구상하고 있습니다. 돌보는 사람도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⑤ 현지가 이끄고, 현지에 남는 지원

이번에도 그랬듯, 사업의 주체는 현지 의료진과 현지 공동체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품은 현지에서 조달하고, 의료진과 자원활동가는 현지에서 양성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피드백 채널을 두어 사업을 고쳐 가겠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끝날 때에는 지역사회와 현지 파트너에 인계해, 글로벌케어가 떠난 뒤에도 돌봄이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방향은 재난 이후 기본 서비스의 회복과 지역사회 회복력을 강조하는 국제 인도주의 조기회복 원칙, 그리고 공동체 기반 정신건강·심리사회 지원 지침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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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함께해 주신 분들께


기꺼이 진료에 나선 전라남도의사회, 힘을 보태 주신 전라남도, 현장의 손발이 되어 준 ASIGLEH와 아라랏 교회, 그리고 늘 글로벌케어와 함께해 주시는 후원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라과이라의 캠프에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이 필요한 어르신과 기침하는 아이들, 다음 진료를 기다리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사흘간의 진료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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