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휴먼즈오브글로벌케어] 활동가 김순남 원장

2024-10-28


휴먼즈 오브 글로벌케어

Humans Of Global Care

-  활동가 김순남 원장 편 -


글로벌케어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휴먼즈 오브 글로벌케어"는 글로벌케어와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글로벌케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활동가이자, 이사이자, 후원자로 아주 오랜 기간 함께하고 계신 김순남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GC)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맡고 계신 직책이 많은데  이사님, 원장님, 활동가님 중 어떤 호칭을 가장 선호하시나요?

안녕하세요, 김순남 원장입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지금은 파주에서 개원하고 있고 글로벌케어와는 2002년부터 함께 활동해 왔습니다. 사실 저는 글로벌케어 이사라는 직함에 맞게 후원자 동원이나 사업비 발굴과 같은 활동을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어 항상 ‘이사’라는 호칭이 걸맞지 않다고 생각해 왔어요. 일터에서 주로 듣는 호칭이 ‘원장’이니 이게 편하네요.


2023년 선천성 안면기형 수술 사업

▲ 사진 1. 2023년 선천성 안면기형 수술 사업


GC) 글로벌케어가 첫 발을 디딜 때부터 함께 하셨는데, 글로벌케어가 지닌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전공의 때 우연히 글로벌케어 창립 예배에 참석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제 한국에서도 의료 NGO가 시작된다는 기대가 컸고, 언젠가 나도 같이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었죠. 글로벌케어의 매력은 첫째, 자발성이라고 생각해요. 글로벌케어는 그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조직의 힘으로부터 자유롭고 자발적 헌신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이 비정부기구 NGO의 활동 취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둘째, 글로벌케어를 움직이는 유일한 외부 압력은 세상의 결핍에 대한 반응이죠. 우리는 필요가 있는 곳에 갑니다. 특히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 더 갈려고 합니다. 셋째, 의료의 전문성입니다. 곤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 중에는 의료적 필요가 많아요. 물론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분야 중 하나일 뿐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GC) ‘나누고 돕는 삶’에 대한 이사님만의 소신, 신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코이카 협력 의사로 라오스에서 근무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라오스에 가겠다고 결심한 계기, 혹은 결심과 관련된 일화가 있으신가요?

전에는 ‘내가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내가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내가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다가 주인공이 마차에 깔려 죽어가는 사람과 그 가족을 아무런 대가 없이 돕고 난 후 그의 마음을 억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지고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는 장면에서 누군가를 도울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가 생각하게 됐어요. 남을 돕는 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도 그 기쁨을 누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1999년부터 2년간 코이카에서 파견하는 정부 파견 의사로 라오스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어요.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언젠가 코이카 같은 기관을 통해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코이카 인력풀에 등록해 놓고 전임의 수련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병원 일상에 묻혀 잊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1999년 5월경 코이카로부터 라오스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할 의향이 있는지 연락이 와서 가족과 상의 후에 라오스에 가기로 했어요. 당시에 라오스에 대해서는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 공산주의 국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자세한 형편은 현지에 가서야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라오스에 가게 된 특별한 계기라고 할 만한 게 없네요. 그저 언젠가 의사가 되면 해외 오지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대학 1학년 때의 꿈을 이루어 보자는 것 말고는요.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막상 가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죠. 당시에 아이들도 아직 어려서 아내의 후원과 동의가 없었으면 함께 가기 어려웠을 거예요.


GC) 현재 글로벌케어 후원자이자 후원병원으로도 함께하고 계시는데, 후원 이외에 개인적으로 실천하고 계신 활동(봉사)이나 관심이 가는 활동이 있으신가요?

글로벌케어 사업 중 하나인 선천성 안면기형 수술 사업에 함께 하고 있어요. 제가 라오스에 대해 경험이 조금 있어 2002년 이래 줄곧 라오스에서 매년 한 차례 수술 과정을 돕고 있어요. 그밖에 관심 있는 분야는 환경운동인데 열심히 하지는 못하고 있고 후원과 함께 환경운동 관련 토론회에 참가하는 정도지요.


2024년 선천성 안면기형 수술 사업

▲ 사진 2. 2024년 선천성 안면기형 수술 사업 (뒷줄 왼쪽에서 네번째)


GC) '소아과’로 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의과대학 학생 시절에는 외과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러나 군복무 마치고 수련과목을 결정하기 전 일단 필수 의료과목 중에서 소아과에 관심이 끌렸어요. 제가 아기들을 좋아하고 특히 병든 아기들을 돌보는 소아과 의사가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만 해도 출생률 저하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았던 때라 소아 인구 감소에 대한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어요. 요즘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는 전공의가 급감하는 데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소아 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적 현상이라고만 보기에는 너무 심하게 줄어들고 있어요. 해외 진료 현장에서도 소아과 의사의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어요. 특히 영양 부족에 의한 각종 질병과 성장 문제는 소아과 의사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바라기는 소아과를 지원하는 후배 의사들이 늘어나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필요한 역할을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GC) 가장 기억에 남는 롤모델이나 가장 존경하는 의료인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다녔던 학교 교정에서 매일 마주쳤던 동상의 주인공이자 김병수 이사장님이 강조하셨던 에비슨 선교사님이 가장 기억에 남죠. 33살의 젊은 나이에 조선에 부임하여 40여 년을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오로지 조선인들을 위한 삶을 살다 가신 분이죠. 한국인 의사 중에선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저의 롤모델입니다. 가난한 환자들에게 베풀었던 인술의 모범을 보여 주셨죠. 의료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보여주셨고요. 

이 두 분들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자신들이 누렸던 의학 교육의 기회와 성과를 자신과 가족에게만 돌리지 않고 어렵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었다는 점이에요. 이 부분은 제가 지금 함께하고 있는 글로벌케어의 정신과도 일치합니다.


아이를 진료하는 김순남 원장

▲ 사진 3. 아이를 진료하는 김순남 원장 (오른쪽 두번째)


GC) 글로벌케어 긴급구호 현장(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긴급구호 등)에 가셨던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2006년 5월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지진 때 글로벌케어 긴급구호팀으로 참가했어요. 진앙지는 족자카르타 인근 해저였지만 시내와 가까운 머라피 화산에서는 시뻘건 용암 분출이 같이 시작되었어요. 그야말로 단테의 지옥편에 서술된 내용과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고 수 십 차례 여진이 계속 발생하면서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극에 달한 상황이었어요. 저희 팀은 강진이 발생한 지 며칠 후 현지에 도착하여 구호소를 설치하고 활동하였는데 여진이 일어날 때마다 놀란 주민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곤 했죠.

그때 머라피 화산 기슭에 있는 마을에서 환자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 저희 팀이 와주었으면 하는 요청이 현지 선교사님을 통해 전파되었어요. 화산에서 용암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여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저는 당시 팀장으로서 팀원들의 안전과 현지 주민들의 필요 사이에서 갈등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무모한 결정일 수도 있었는데, 우선 팀원들의 개인 의사를 확인하고 현장에 출동하기로 했어요. 혹시 있을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하여 자의에 의한 결정임을 문서로 서명하고 본부에 보고한 후 현장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어요. 반드시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러 오지 않는다던 피해 주민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위험을 무릅쓴 팀원들에게 감사했죠. 

무사히 활동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감사해하던 현주민들의 표정을 상기하며 팀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던 순간이 기억나요.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족자카르타 시내를 떠나 공항으로 가던 길에서 보았던, 여전히 용암과 화산재 연기를 뿜어내던 머라피 화산의 광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긴급구호에서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긴급구호에서

▲ 사진 4,5.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긴급구호에서 


GC) 글로벌케어와 오랫동안 함께하시며 '모두가 건강한 세상', ‘소외된 이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글로벌케어와 함께하면서 개인적으로 변화하거나 새롭게 생겨난 소망이 있나요?

글로벌케어는 3D(Disease Disaster Death)가 있는 현장으로 먼저 가는데, 그 본질은 사랑이에요. 가난하든, 병들었든 따지지 않고 사랑을 주는 것이 글로벌케어가 행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책이나 뉴스 혹은 TV를 통해 보여지는 세상의 불평등, 억압, 상실, 죽음의 현장을 글로벌케어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더 생생하게 목격하지 못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하니 감사하죠. 이 광경들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은 나와 그 광경 속의 사람들이 하나라는 의식에서 비롯돼요. 글로벌케어와 함께 현장을 다니면서 처음에는 내 안에 있는 잘못을 먼저 발견했습니다. 나는 저들과는 다른 위치에서 혜택을 베푸는 자 라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점점 나와 달라 보이는 저 분들이 사실은 모두 하나이며 내가 할 일은 그저 형제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죠.

또 한 가지 배운 것은 주는 것이 받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퍼 줄수록 더 채워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에 채워지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2024년 선천성 안면기형 수술 사업 아이를 살펴보는 김순남 원장

▲ 사진 6. 2024년 선천성 안면기형 수술 사업 아이를 살펴보는 김순남 원장  (왼쪽)


GC) 글로벌케어를 만들고, 키워가고, 함께하고, 지켜보면서 글로벌케어에 특별히 소망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벌써 27년 차가 된 글로벌케어가 앞으로 어떤 보건의료NGO가 되길 바라시나요?

글로벌케어는 한국 최초의 국제 보건의료 NGO로서 나눔을 실천하는 전문가들의 집단입니다. 설립 30주년을 앞 둔 지금, 1세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과 취지를 널리 알리는 홍보를 통해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하고 필요가 있는 곳에 달려갈 인원들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젊은 분들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분들을 격려하고 국제보건에 관한 비전을 나누면서 앞으로 글로벌케어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GC) 마지막으로, 나에게 글로벌케어란 어떤 의미인가요?

글로벌케어는 나의 거울입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좁은 내 시야 속에 갇히지 않고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 주는 거울입니다. 그러니 소중히 닦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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